수학은 언어다.
이공계(理工系) 분야에서 수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수학은 언어다’라는 비유는 유독 자주 쓰이고, 또 쉽게 공감을 얻곤 합니다.
언어라는 것은 사람이 생각을 전달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라면, 수학은 이공계 전반에서 개념과 논리를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주고받게 해주는 공용어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첨단 분야부터 전통적인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에 이르기까지 수학이 없으면 학문적 소통과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정도로 수학은 중요한 ‘도구이자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왜 ‘언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수학이 중요한 걸까요?
먼저, 언어가 지니는 주요 특징 몇 가지를 떠올려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언어는 생각이나 감정을 기호와 규칙을 통해 전달합니다. 수학도 이와 비슷하게, 숫자·기호·함수·방정식 등의 체계를 통해 우리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아이디어와 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면, 그 과정을 통해 현상의 본질적인 요소만 추출하고, 단순화하여, 일관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일상 언어로 복잡하게 설명해야 할 내용을 훨씬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학제 간 협업이 활발한 현대 과학 기술 환경에서 이러한 수학적 표현이 공통 ‘문법’ 구실을 하게 됩니다.
또한 수학은 특정 문제 상황을 구조화하고 규칙성을 찾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합니다.
실제 언어에서도 ‘문법’이 문장 구조를 결정하고 의미를 정리하듯, 수학에서도 각 분야마다 특유의 논리적 문법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선형대수학의 맥락에서는 벡터와 행렬 연산을 다루는 규칙이 ‘문법’이고, 미적분학의 세계에서는 미분·적분 연산이 정교한 도구이자 문법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수학적 규칙들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공통된 방식으로 연구자들이 해석·토론·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이러한 ‘언어로서의 수학’은 여러 면에서 실질적인 효용성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국제학술지나 국제학회에서 발표되는 연구 결과는 수학적 표현을 이용해 국적이나 언어에 상관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이론이나 가설을 검증할 때도, 논문에서 공식화된 수학적 모형이나 증명 방식을 토대로 서로 같은 문맥 속에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이것은 곧 연구 효율로 직결됩니다.
자연어가 다를지언정, 수학적 표현은 동일하게 통용되기 때문에 국가 간 학술 교류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공계 분야에서 수학적 언어는 연구자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물리학에서는 수학적 방정식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실험 결과를 분석할 때 사용할 동일한 언어를 갖게 됩니다.
“자연의 언어는 수학”이라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유명한 말은 이 점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죠.
화학과 생물학 역시 필요한 영역에서는 충분히 수학적인 모델을 적용함으로써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패턴이나 규칙으로 정리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해 갑니다. 특히 분자생물학, 유전체학 분야에서는 통계와 확률 모델이 크게 작용해 과학적 발견의 속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시대로 넘어오면서, 수학은 더욱더 ‘공용어’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머신러닝의 기초에는 선형대수학과 통계학, 최적화 이론 등이 있으며,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 구현 과정에서 대수학적 구조와 확률적 해석이 필수적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구현된 알고리즘이라 해도, 그 이면에는 결국 수학적 모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딥러닝의 신경망 구조는 행렬 연산과 그래프 이론의 응용으로 설명되며, 자연어 처리의 발전에도 고차원 벡터 공간과 확률 모델이 적극 활용됩니다.
이는 이공계 전 분야가 공유하는 ‘수학’이라는 틀 안에서 확장·응용되고 있는 것이며, 국가나 지역, 종사 분야를 넘나드는 소통에 탁월한 강점을 발휘합니다.
나아가, 수학의 ‘언어적 특성’이 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보편성’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어는 문화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고, 번역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의사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수학은 전 세계가 똑같은 기호 체계와 공식을 쓰며, 그 의미를 정확히 합의할 수 있습니다. 일상 언어는 때로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수학 언어는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용합니다.
물론, 수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 기호 체계와 규칙이 낯설 수 있지만, 한 번 익히고 나면 자연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융합적인 표현력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을 ‘단순한 도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말소리가 아니라, 그 안에 사고방식, 문화, 문법,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듯이, 수학 역시 풍부한 사상적·역사적 축적이 반영된 학문입니다.
이 점에서 수학은 공용어임과 동시에 수많은 문화적 교류의 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은 이슬람권으로 전해져 해석학으로 발전했고, 17세기 유럽의 수학 혁신은 다시 전 세계로 확산되어 미적분학이라는 언어 체계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렇게 축적되어 온 수학의 유산 덕분에 오늘날 전 지구적 과학기술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어적 관점에서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학습 방법에도 영향을 줍니다.
언어를 학습하듯이, 수학도 ‘표현하고 이해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에 적힌 공식을 암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제에 그 공식을 적용해 보거나,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수학적 용어와 관점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언어 공부를 할 때 말하기·듣기·읽기·쓰기 과정을 고루 훈련하듯, 수학에서도 문제 풀이, 증명, 모델링, 논리적 토론, 프로그래밍 실습 등을 통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공계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학은 ‘공통 언어’이자 ‘생각을 확장하는 사고도구’로 작용합니다.
통신공학자가 나눗셈 정리에 기반해 코딩 이론을 연구하거나, 생물학자가 확률통계를 이용해 임상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습에서 보듯, 전혀 다른 분야라도 수학으로 이어지면 서로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학을 ‘언어’로 여기는 시각은 이공계 전반에서 의미 있는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핵심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공계에서 수학을 언어로 바라보는 시선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지식의 총합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요구입니다.
자연법칙의 근본을 꿰뚫고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데 있어, 이공계 종사자들은 수학이라는 공용어를 통해 세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한층 높은 수준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학의 본질과 아름다움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학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사고의 체계를 잡아 주고, 질서와 논리를 부여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는 지적 언어인 것입니다.